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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골노부부의 결혼생활 58년
글쓴이 : 로맨스그레이     조회 : 199     작성일 : 2023-03-18 14:20:02
밤새도록 붕어 한마리 구경못하고
애매한 가물치새끼만 내 낚시에 걸려 사망하는 조행,

새로운 곳을 탐사할려고 처음 가는 길을 골라 잡아서
경산에서 영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북안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무작정 진행을 하여 길옆에서 제방이 보이는 산골짝 저수지는 모두
올라 가 살피며 하행하며
이름모를 동네 하나를 지나치는데

동네 윗쪽 산기슭에 산계곡을 막은 제방
높이가 10m는 넘어보이는 저수지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달리던 차를 멈추고 후진하여 그 저수지쪽으로 난 마을 중간길로 1킬로정도를 산쪽으로 들어가니

눈앞에 전개되는 아담한 저수지 물색도, 적당히 깔린 수초도 내마음을 마구 유혹한다.
35도네 어쩌네 하는 날씨가 아침부터 땅을 달구기 시작하여 그늘을 찾아
아침을 지어먹고 발뿌리에 투덕 투덕 떨어지는 시큼한 살구 몇개를 줏어먹고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하는데 고개깃을 허리굽은 할머니 한분이
시장용 손수레를 끌고 올라오다 우리 옆 그늘에 슬며시 앉으며
"낚시 왔으마 물가에 앉아있어야지, 그늘에 이라고 있으마 괴기가 잡히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쉽게 나누지 않는
나였지만 그 할머니 나이들고 햇빛에
까맣게 탄 얼굴이지만 젊었던 시절 꽤나 고왔을 법한 모습과
바우님의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에서 얻는 진한 향기를 묻혀오는 글들을 보았길래 그래 오늘은 이 할머니에게서 무슨 진솔한 삶의 이야기하나
건져보자하고 "할머니,어디 다녀오세요"라고 수인사를 건넸다
"엉,대창에 볼일보고 오는 길이지"
"할머니,저 산골짝에 동네가 있는 모양이지요?"
"엉,동네있지,내가 그곳에 살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할머니,자제분을 몇이나 두셨어요?"
이 얘기에 할머니 눈을 가늘게 뜨고 조금은 게면쩍어 하면서
"열"
"예? 열명이나?"
"그래,딸 만 놓다가 아들 놀라고 놓다가 보이까네 열이나 낳다
딸여덟,아들 둘, 그때는 생기는 데로 다 놓다보이 그래 안됐나"
농담 좋아하는 동행한 친구
"할머니 산골에서 날만 어두어지면 할아버지하고 안고 주무셔서 그런것 아닙니까"
이말에 할머니도
"그것도 맞다,우리 영감이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거덩"
"할머니,젊으셨을적엔 무척 고우셨겠습니다,따님들이 다 예쁘시겠네요?
"그래,우리 딸 모다 키크고 늘씬하고 이쁘다"
"다 출가는 시켰습니까?"
"막내딸이 경대 수학과 다니다가 우리 사우하고 눈이 맞아가 4학년때 마지막으로 시집안갔나,거기 한 십년되었나"
"아이구! 할머니 막내따님이 경대 수학과 나오셨으면 공부 잘했네요"
"그래,우리 애들 나 닮아서 머리 좋다
내가 국민학교 댕길때 수학은 99점도 없다,모두 100점 맞았디라"
"아이구,할머니 대단하셨네요,그런데 시집을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그래,내 친정 청도에서 가마타고 열아홉에 이곳 이길 말고 저쪽 고갯너머길로 시집온지가 이태(두해)만 있어마 육십년이다"

내친구 "그래 낳은데로 깜부기(일찍 죽은 자식을 일컬음)없이 모두 잘 자랐습니까"
"그래,다 잘 자랐지.썩 잘 살지는 몬해도 다 고래 고래 산다"
"둘째 아들이 좀 사는기 빠졌는데 저그 형제들끼리
돈 모아서 33평집을 사줘서 열남매 모다 지집 건사하고 산다,이제 원없다"
"할머니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나? 물 만큼 묵었다"
그거들은 나이가 얼매나 되노?
그말에 내친구 "우리도 나이 많심다,손주를 둘이나 봤는데요"
"뭘,그럴라고,그렇게는 안되어보이는데 손주 봤으마 오십너댓은 되었겠구마"

한참을 이야기하다 날은 덥고 할머니가 사신다는 동네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걸어 가실려면 고생이 되겠다 싶어
"할머니,날도 더운데 제가 차로 모셔 드릴까요?"
"그러마 좋지,우리가 벌을 치는데 다른거는 엄고

시원한 꿀차 한잔씩은 드리지"

그말에 아침 식사한다고 길에 늘어놓은 취사도구랑 자리를 대충 접고

할머니를 뒷자리에 모시고 산골짝으로 들어서는데 한 1킬로정도나 될려나 하고
들어간 산골길이 꼬불 꼬불 제법 들어가고 그길이란게 자동차 바퀴가 겨우 들어 얹히는 세멘포장길
모시고 오길 잘했다 이 먼길을 굽은 허리로 손수레 끌고 오실려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생각되고 십여호가 자리하고있는 동네 산쪽 제일 끝집이
할머니 집이란다. 막 집앞에 도착하니 키가 훤칠하고 신수좋은 할아버지
한분이 뒷쪽 논길을 내려오신다
" 저 분이 할머니 할아버지십니까?"
"맞소,저영감이 내영감이우"

집앞에 차를 대고 내리자 할머니 웃으시면서
"영감,손님 왔소 내가 힘들다고 태워 준다고 해서 타고 왔소"
집 뒤쪽으론 대나무가 큰키로 도열하여있고 문없는 대문에는 접시꽃과
사철나무가 보초를 서고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서는데
집앞 텃밭에는 벌통이 벌려져있고 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산골마을의 평화로운 그림........

자리를 잡기 바쁘게 냉장고에 시원한 보리차와 한되짜리 음료수병에 들어있는 꿀한병을 내 놓으면서

"먹고 싶은 대로 싫컨 타서 잡수소"라고 하신다
갈한참에 두잔을 꿀을 듬뿍타서 거푸마시고 나서
"할머니,할아버지가 아주 잘생기셨습니다"
근동에서 키가 제일로 크셨겠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자 "우리 영감 말도 마소 젊었을적에 소문난 한량이고
바람쟁이고 술꾼이어서 내가 속 무던히도 썩었소"
히히,이말해도 우리 영감은 귀가 어두워서 무슨 말하는지 모리요"
하면서 할아버지를 향해 큰소리로 "영감 욕하는구마"
그말에 할아버지 빙긋 웃으시며"우리 아 열이나 되는 얘기 했나?"
"했지요"
"무신 자랑이라고"
"내가 이쁘서 우리 영감이 나를 자나 깨나 가까이 해서 아를 열이나 안 낳았나"
"그런데 우리 영감은 내가 영감을 좋아해서 그리 됐다고 어디 가마 얘기
안하요"

그 할아버지 연세가 여든하나인데 지금도 허리가 꼿꼿하시고 키가 우리
보다 한뼘은 더 큰것으로 보아 젊은 시절 키가 180은 훨씬 넘었을것 같고
얼굴도 산골 햇볕에 거을렸을터인데도 혈색이 좋고 내친구 얼굴보다 훨씬
희고 쭉 곧은 콧대랑 말 그대로 젊은시절 어디를 가도 돋보였을법한
모습이었다

"방안에 내가 쓴 붓글씨 함분 보소"
연거푸 두어잔 꿀물을 들이키고 한숨돌린
우리에게 할머니 솜씨자랑을 하신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토담벽에 할머니가 쓰신 붓글씨가 여러장 걸려있다
서예을 잘 알지는 못해도 칠순할머니가 쓰신 글로서는 제법 운치있고
나름대로의 향기도 배어나오는 글
할머니 그런데 공부도 잘하시고 인물도 참하시고 한데 어떻게 이런 산골로
시집을 오셨습니까?"
하고 궁금해하자 우리 아부지가 그때 글줄읽고 선생이나,똑똑한 넘들은
모두 제명대로 못사는 더런 세상이라고 농사짓고 몸 건강하면 제일이라고
주위의 좋은 혼처 모두 뿌리치고 이곳으로 시집을 보냈다면서
"그래도 나는 서운해,좀더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갔으마 내 재주를 살렸을 텐데 하시며

뭔가 삶의 여운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신다

집안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할아버지,할머니 두분이서 같이 앉으세요,제가
사진 한장 찍어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사진은 뭐 할라꼬"하시자
할머니"아이구,찍어 준다칼데 얼른 한장 찍읍시다"
하시며 할아버지 옆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다가 앉으신다
"자,할머니 찍습니다 웃으세요,하나 둘 셋"
한시간여 이런 저런 얘기 나눈속에는 첫딸이 군인 준위한테 시집을 갔는데
손녀딸이 장교로 들어가 행정을 맡게 되었는데 뛰고 산을 타는게 군댄줄 알았는데

행정을 보니 답답하다는둥하는 선머슴아같은 손녀자랑
큰아들이 군대제대하고 보름만에 바로 현대중공업에 들어가 이십오년인가를
근무하였는데 돈도 많이 벌고 계급도 높은것 같지만
돈을 얼마나 버는지 계급이 뭔지는 물어 보도 않았다는 자랑
열아홉 처녀로 시집와서 집뒤쪽 산자락에 대여섯마지기 농사지으면서
열자녀 모두 고등학교까지 시키고 막내딸은 대학시킨얘기
처음 시집올때 이십칠팔호 되던 동네가 이제 십여호만 남았다는 얘기
잘 사는 집은 대처로 나가고 못사는 사람은 먹고살질 못해서 먹고 살려고
대처로 나가고 어중간한 우리같은 사람만 남아서 이제 이 동네 얼마지
않아서 한집도 안남고 다 나갈거라면서 "아매,우리가 가장 오래 남을기라
우리는 임씨문중 제실도 저기 있고" 하는등의
얘기 끝에 "이제 영감 먼저가면 나혼자 무서워서 여기 못살끼라
경로당도 큰길옆 동네(할머니집에서 3킬로정도 상거해 있슴)로 나가야
되고,사람이 기립어(그리워) 오늘 동무해 주어서 참 좋다"
"이제 살만큼 살았응께,조금 더 살아야하는데 우리 어매 일찍 갔다는 말
들을 즈음에 떠나야지, 너무 오래살다 보면 자식 앞세우는 험한 꼴
볼지도 몰라"
눈을 가늘게 뜨고 나즉히 한숨쉬며 쉬엄 쉬엄 얘기를 엮는 할머니의 모습에
산골마을에 꽃다운 열아홉처녀때 시집와서 노름하고 바람피는 할아버지와
살며 열남매를 다 잘 키워 출가시킨 할머니의 뉘엿 뉘엿 떨어지는
낙조와 같은 삶이 폴 폴 묻어나와
"할머니,자식 열 낳아 모두 훌륭히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시고
할아버지와 오십팔년을 함께하셨으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하며 일으서는데 "사진 그거 보낼라마
우리 아들 주소 있어야 하는거 아이요"하시며 찍은 사진을 챙기신다
"예,아드님 전화번호를 적어 주세요"
하자 누런 편지봉투에 또박 또박 큰아들 작은아들 전화번호를 적어주신다
전화 번호를 받아쥐고
"할머니 이 근처에 낚시 오면 다시 들리겠습니다
그때도 맛있는 꿀차 또 주실거죠"

"그래,그래 꿀차야 얼마든지 주지,사람 기러분(그리운)데 오늘 젊은 양반들때문에
이 할매가 호강했구마넌,차 조심해서 잘 가소"
(200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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